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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격찬한 수원 화성의 치밀함 세계가 격찬한 수원 화성의 치밀함 우리나라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문화재는 종묘,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창덕궁 등이 있지만 특히 수원화성은 다른 유적에 비해 그 규모가 큽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유로는 종묘는 제사 지내는 대표적인 유적이기 때문이고 불국사는 신라 때 대표적인 불교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또 해인사 장경판전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불교 인쇄물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으로는 중국과 다른 양식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창덕궁을 선정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수원화성은 우리나라가 성곽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어서 대표적인 성으로 선정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울 성곽과 수원화성이 비슷하지만 서울 성곽은 도로정비 등으로 성곽을 다 헐어내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 2023. 4. 21.
종묘에 관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 종묘에 관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 그럼 이제 눈을 돌려 다시 종묘를 살펴보겠습니다. 종묘의 위치는 경복궁이 들어선 백악산의 그 한줄기가 도심까지 뻗어 들어오는 끝자락입니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경복궁에 이르고 다시 이어져 종묘에까지 닿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 했듯이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예외조항들이 있는데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던 사람들도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조신시대때 세자들 중에는 책봉이 되었다가 왕위에 못 오른 세자들이 있는데 이들도 죽고 나면 왕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모셨고, 죽은 다음에 왕위에 오른 사람도 종묘에 모셨던 것입니다. 현재 종묘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부터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이은공 그리고 부인.. 2023. 4. 21.
종묘의 풍수 지리적 위치 종묘의 풍수 지리적 위치 먼저, 풍수는 조화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물과 공간의 배치와 배치를 다루는 고대 중국 철학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에너지의 자연적인 흐름, 즉 "기"에 맞추면, 개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균형과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종묘는 풍수지리의 원리를 구현하는 중요한 문화적, 역사적 장소입니다. 종묘는 조선시대인 14세기에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어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유교 왕실의 사당입니다. 이곳은 풍수지리학의 기본 원리인 남북축을 따라 조성된 직사각형의 땅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풍수에 따르면, 건물이 향하는 방향은 기의 건강한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남북 방향은 음양.. 2023. 4. 20.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2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2 왕의 침전인 강녕전은 1395년 태조 4년에 창건하고 정도전이 건물의 이름을 지었다. 강녕은 5복의 하나로서, 임금이 강녕하면 그 혜택이 백성에게 이른다고 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 고종 4년에 다시 지었다. 1867년 다시 불에 타 1888년 중건하였으나, 1917년 불에 탄 창덕궁의 내전인 회정전을 다시 짓는다는 구실로 철거하여, 목재를 옮겨 사용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정면 11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음과 양이 결합하는 침전에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가로막는다고 하여 없앴다고 한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은 1394년에 처음 지어졌다. 임.. 2023. 4. 20.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1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1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1395년 태조 4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창덕궁과 창경궁이 먼저 복구되었고, 경복궁은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한동안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865년 고종 2년 대대적인 재건 공사가 시작된 후, 경복궁은 다시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에게 무참히 시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고, 그 후로 고종은 덕수궁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만다. 더욱이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후, 경복궁은 일본인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4,000여 칸의 건물이 헐리는 등 제 모습.. 2023. 4. 20.
서울 지형과 지질 서울 지형 천도 당시의 서울은 주로 도성 안을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 북악산, 동쪽에 낙산, 남쪽에 남산, 서쪽에 인왕산의 이른바 옛 성곽이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서 좀 낮아진 안부에 사대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하였다. 그중 남대문이 있는 일대는 약간 높은 구릉지에 불과하였다. 현재의 남대문 주변은 구름같이 보이지 않으나 이곳이 서울을 남서사면의 용산 및 서대문 방면과 북동사면의 종로 및 을지로 방면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남쪽으로 곧바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쪽으로 흘러 서울분지를 지나서야 한강으로 유입하는 것은 남산. 남대문. 서대문으로 이어지는 분수령이 있기 때문이다. 도성 안의 서울 중심부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인공적으로 많이 변화되었.. 202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