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1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다. 1395년 태조 4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창덕궁과 창경궁이 먼저 복구되었고, 경복궁은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한동안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865년 고종 2년 대대적인 재건 공사가 시작된 후, 경복궁은 다시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명성황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에게 무참히 시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고, 그 후로 고종은 덕수궁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만다. 더욱이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후, 경복궁은 일본인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4,000여 칸의 건물이 헐리는 등 제 모습..

서울 지형 천도 당시의 서울은 주로 도성 안을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 북악산, 동쪽에 낙산, 남쪽에 남산, 서쪽에 인왕산의 이른바 옛 성곽이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서 좀 낮아진 안부에 사대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하였다. 그중 남대문이 있는 일대는 약간 높은 구릉지에 불과하였다. 현재의 남대문 주변은 구름같이 보이지 않으나 이곳이 서울을 남서사면의 용산 및 서대문 방면과 북동사면의 종로 및 을지로 방면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남쪽으로 곧바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쪽으로 흘러 서울분지를 지나서야 한강으로 유입하는 것은 남산. 남대문. 서대문으로 이어지는 분수령이 있기 때문이다. 도성 안의 서울 중심부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인공적으로 많이 변화되었..

서울의 위치 서울은 백제가 오랫동안 도읍한 곳이며 고구려의 남평양성이다. 신라와 고려 때에도 현재의 수도 서울은 북한산주. 한양군. 양주 등의 이름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멸망 후 조선 태조는 새로운 국도로 현재의 서울을 택하고 태조 3년(1394)에 개성에서 천도하였다. 서울을 수도로 정하는 일은 신중하게 진행되었고 수도로 정하는 과정이 기록에 잘 남아 있다. 서울을 수도로 정하게 된 이유로 서울문화와 하천의 배치가 풍수지리적인 길지에 잘 맞는 점과 우리나라 전체로 볼 때 중앙에 위치하고 수륙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그리고 군사적인 방어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도풍수의 입장에서 서울문화수를 보면 조산인 북한산(삼각 산이라고도 함)에서 주산인 백악 또는 북악산에 연결되며 윙..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한반도의 서쪽 중심부에 위치하며, 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흐르고,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의 영향을 받아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세계 여러 나라 도시 가운데서도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선사시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으로 한반도의 중심이 되어온 곳입니다. 예로부터 서울은 지리적 위치상 한반도 남북 문화권의 경계지대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최초로 수도로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백제 건국 초기로, 찬란한 백제문화는 한 반도의 문화를 일구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주도권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를 통해서도 한..